아빠는 위암에 걸렸다가 퇴원했고 엄마는 예전에 자궁암에 걸려서 수술하더니 평소에도 보청기를 끼고 다닐 정도의 귀가 이젠 정말 안좋아졌는지 수술을 한댄다.
근데 그걸 절연한지 2년 지난 지금 보험설계사인 본인 친구를 통해서 내 보험을 알아보려고 하더라. 이게 무슨 기분일까. 그 전화를 받았을 때의 나는 무슨 기분이었더라.
학교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던 나는 그 날도 어김없이 학생들 결석계를 엑셀 작업하던 중이었고, 평소 모르는 번호는 바로 거절하던 내가 그 전화를 받은 건 순전히 새로 구할 집의 대출 관련해서 전화가 온 건가 해서 받았던 건데..
참 알 수 없는 기분이 나를 휩싸이게 했다. 내 뒤에는 엘리베이터 앞에 줄 선 학생들이 있었고 그들과 나는 기둥 하나를 등지고 통화를 했다.
그때 눈물이 왜 흘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순전히 눈물이 많은 탓일까? 혹은 그 사람에게 연민을 느꼈던 걸까? 얄팍한 동정심은 아닐까도 생각했다. 이게 무슨 기분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단순히 그때는 눈시울이 시큰거렸고 마스크가 젖어서 숨을 쉬기 힘들었다.
요즘따라 잠잠해진 자살 생각이 다시 종종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내 전 가족들은 어째 행복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까. 저 인간들에 비하면 나는 과연 불행하다 엮을 수 있을까?
난 그저 이혼 가정에서 자라 성인이 되자마자 집에서 쫓겨났을 뿐인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이다. 비록 부모가 살아있어도 살아있다 느끼지 못할 뿐. 주변에서는 휴학해서 여행다니고 부모님의 토닥임과 위로를 받을 동안 난 그저 일하고 공부를 할 뿐인 어린애이다.
고작 돈이 없을 뿐인데, 고작 가족이 없을 뿐인데 그게 날 너무 비참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내 미래도 그려지지 않는다. 뭐랄까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것 같으면서도 보잘 것 없는 일에 힘들다 허우적대는 나약한 벌레를 보는 것과 같다.
이런 얘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지 못하겠다. 친한 친구 몇몇은 내 사정을 알고 있지만 내 감정을 세세하게 얘기할 수는 없다. 힘들다고 얘기해봤자 감정쓰레기통으로 쓴다고 느낄 것 같고, 나도 점점 기댈 것 같기에. 절대. 얘기하지 않을 거다.
그럼에도 이런 감정을 어딘가에 쏟고 싶다. 힘들다고 하면 토닥여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휴학도 하고싶고, 자기계발을 할 정도의 시간이 생겼으면 좋겠다. 매일 아침 7시에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일하고 집에 들어가면 밤 11시~12시인데 내가 너무 나약해서 힘들다고 느끼는 걸까?
이렇게 나약할 거면 도태되어 죽는 게 이로울 것도 같으면서도 겁쟁이인지라 죽을 용기가 없다는 게 웃기고.. 허울 뿐인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 또다시 나는 소파에 드러눕는다. 돈을 모아 겨우 산 침대에는 눕지도 않고 몇 십 년 돼서 버리려던 걸 받아온 낡은 소파가 왜 더 편한지 모르겠지만.
눈을 감으면 내 세상이 끝났으면 좋겠다. 잠들고 눈을 떴을 때 지금 이 모든 게 거짓이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나라는 존재가 지워져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내 예전 가족들도 친구들도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실명되게 만들고, 머리를 흉기로 깨부수는 아빠도, 이혼을 밥 먹듯이 하며 내게 친아빠에게 연락해 돈 달라고 부탁하라는 엄마도, 다 싫다. 날 사랑했는지 조차 모르겠는 아빠. 20살이 되자마자 날 내보낸 엄마. 엄마가 친아빠한테 돈 달라 하라며 소리지르고 날 때릴 때조차 날 경멸하듯 쳐다본 큰외삼촌. 그럼에도 엄마 말을 안따른 내 잘못이니 앞으로는 엄마 말이나 잘 들으라던 외할머니. 영원히 기억하기도 싫은 새아빠와 마지막으로 본 엄마의 남자친구까지.
그 누구도 이제 앞으로 나한테 연락이 안오길..죽었다는 소식 또한 내 귀에 닿지 않길..더 이상 그들과의 접점은 없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꿈속에서는 엄마가 내 발을 붙잡고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매일 밤 자살하고 엄마에게서 도망친다. 내 발을 붙잡는 손길이 현실까지 내게 닿지 않길 바란다.
모두 죽길 바라면서도 죽길 바라지 않는 내 마음을 누가 설명해줬으면........